전라남도 장성군에 위치한 **필암서원(筆巖書院)**은 조선 중기 대유학자이자 도학, 절의, 문장에 모두 탁월했던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선생을 모신 유서 깊은 서원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아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2019년 7월에는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 역사적, 문화적 중요성을 전 세계적으로 공인받았습니다.
'전학후묘'의 건축 미학
필암서원은 서원의 본질적인 기능인 '교육'과 '배향(제사)'에 충실하게 지어진 공간입니다. 특히, 이는 **'전학후묘(前學後廟)'**라는 독특한 건축 배치를 통해 구현됩니다. 즉, 배움의 공간인 강당과 재학생들의 거처를 앞에 배치하고, 선현을 기리는 사당을 뒤쪽에 두어 학문 정진을 우선시했던 조선 시대 선비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단순히 공간의 구분을 넘어, 유교적 이상과 교육 철학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살아있는 기록의 보고(寶庫)
필암서원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문화유산이지만, 서원 내에 보관된 수많은 자료들이 그 가치를 더욱 높입니다. 보물 및 기타 문화재로 지정된 목판, 문서 등은 조선시대 서원 운영 방식과 선비 교육의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자 사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이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 유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고 생활했으며, 서원이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시대의 격랑을 이겨낸 불굴의 정신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이 강력하게 추진한 서원철폐령은 수많은 서원들이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필암서원은 철폐되지 않고 남아 그 역사적 명맥을 이었습니다. 이는 필암서원이 단순한 향교가 아닌, 지역민들에게 존경받는 김인후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학문 연구에 매진했던 살아있는 교육 기관이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필암서원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도 그 가치를 잃지 않고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불굴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필암서원은 단순한 옛 건축물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학문과 정신, 그리고 교육의 이상을 엿볼 수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전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그 가치를 공유해야 할 소중한 공간입니다. 장성을 방문하신다면, 필암서원에 들러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선비 정신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